오키나와 전도 에이사 축제
「오키나와 전도 에이사 축제」는 1956년 「코자시・에이사 콩쿨」(1974년에 코자시와 미사토촌이 통합 되면서 오키나와시가 탄생)로서 개최되었습니다. 전쟁 후 기지 의존 경제 활동하며, 상업도시로서 발전해 왔지만 미국 정부의 오프 리밋트(미국인, 군족, 가족이 민간지역에 출입 금지 규제)가 선언되면서 상인들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시민들은 어둡고, 희망을 잃어버린 시간이 계속되고 있던 어느날, 전쟁 후 부흥의 심벌이였던 에이사가 코자시에서 자주 열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에이사로 마을의 활기를 되찾고자 에이사 콩쿨을 개최한 것이 처음 시작입니다. 제1회 대회는 오키나와 전도 에서 선발된 9팀이 참가하여 3만명의 관중이 모여 들었습니다. 참가 팀은 일정의 심사 기준에 따라 심사를 받아, 팀의 대형과 기술, 구성인수, 의상 등, 각 청년회 창작 에이사를 하여 서로 경쟁하였습니다. 이 때부터 각 지역에서의 에이사가, 보여주는 에이사로 서서히 변화 되어, 현대 에이사의 의상이나 축제에서 볼 수 있는 팀 대형의 원형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지역에 따라 아름다움의 가치가 조금식 다르기에 에이사에 우열을 가리기는 한계가 있었고, 심사 결과에 불만을 표하는 팀들도 생겼기 때문에 콩쿨은 폐지 되었지만, 제 22회(1977년)부터 [오키나와 전도 에이사 축제]로서 다시 개최되었습니다. 현재에는 3일간 열리며, 첫날은 오키나와시의 메인로드를 각 청년회 팀들이 행진하는[미치쥬네-], 둘째날은 오키나와시의 청년회 팀들에 의한 [오키나와시 청년 축제], 마지막날에는 오키나와현의 각지에서 선발된 팀들의 다양한 에이사가 펼쳐집니다. 3일간 열리는 축제에는 30만명의 관객 동원 수를 자랑하며, 오키나와의 최대 에이사 축제로 발전했습니다. 매년 피날레의 연례행사인 카챠시(오키나와 전통 춤)로 회장이 모든 사람이 하나가 되며, 축제의 마지막을 알리는 불꽃은 오키나와의 여름밤에 더 큰 즐거움을 선사해 드릴것입니다. (참고문헌 :[에이사-360도])